재민이가 임무를 하러 나가고, 나도 성찬이의 병문안을 가려다가 퇴원 소식을 들었다. 그럼 마중이라도 갈까 하다가 맘을 고쳤다. 나갔다가 길이 엇갈리면 안 되니까.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성찬이가 오지를 않는다. "곧바로 집에 안 오고 어디를 간 거야? 그 몸으로?" 혼자 중얼거린 소리에 곧바로 대답이 돌아왔다. 팀장님이었다. "젊잖아요. 산책이라도 하고 있...

"누나, 난 누나가 가이드라 좋아요. 우리한테 가이딩을 해줘서 좋은 게 아니라 누나가 이 고통을 알 필요도 없고 위험할 일 없다는게 좋아. 그러니까 이상한 생각도, 자책도 하지 마요." 정재현과 동혁이에 이어 마지막으로는 재민이가 말을 했다. 꼭 나와 모두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시기적절한 위로였다. 침묵 속에서, 성찬이의 워치 화면이 초록빛으로 찰랑찰랑 차...

몸이 살살 흔들리는 느낌에 잠에서 깼다. 눈을 뜨자마자 웃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 시야 한 가득 들어찬다. '누나.' 소리를 내지 않고 입 모양으로만 나를 부르는 것은 마크였다. "뭐야?" 물음에도 대답이 없다. 씩 웃기만 하더니, 제 왼쪽 뺨을 들이밀고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린다. '뽀뽀.' 잠이 덜 깨 다가오는 뺨에 입술을 내어주고 말았다. 입술에 제멋대로...

18편 (완결/Clean Ver.)

*본 회차는 클린 버전입니다. 성인 버전을 따로 발행하였으니 결제 시 유의해주세요 ♬Hurt 재현은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한 눈에 보이는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었다.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을 한명도 놓치지 않고 유심히 바라보며. 이곳에 온 목적 두 가지 중 한 가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뤄야 했다. 조명을 받으며 가장 행복하게 웃고 있을 여주의 모습을 보지 ...

17편

♬Better Together 옆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린다. 초조한지 잔뜩 경직되어 있는 도영씨가 낸 소리였다. 그가 이렇게 긴장을 대놓고 드러내는 것은 처음 보았다. 내가 꼭 지켜줘야지! 위로차 그의 손을 꾹 잡았다 놓는데 그가 멀어지던 내 손을 도로 잡아왔다. '더-' "더 잡아줘요.." '후.. 긴장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아요.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는...

16편

도영씨를 봤던 친구에게 고민 상담을 했다. 이런 능력을 얻게 된 뒤로 주변 인물들(특히 내 가족과 친구들)의 속마음을 읽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으나, 대화할 때 눈을 보던 습관은 아직까지도 고쳐지지 않고 불쑥불쑥 튀어나왔다. 요즘 들어 자주 하는 생각이지만, 사람들은 생각보다 못됐고 또 생각보다 착하다. "그.. 나 다니는 필라테스 같이 하는 언...

15편

*15세 이상만 봐주세요 걸림돌이 사라지니 거의 매일이 데이트였다. 야근을 하면 하는 대로, 하지 않으면 않는 대로 데이트가 이어졌다. 그는 내 일을 대신 해주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참았다. 왜? 해주지는 않더라도 좀 도와주면 안 되나?라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, 곧 듣게 된 '이런 건 오히려 여주씨를 무시하는 행위'라는 도영씨의 속 깊은 마음이 나를 반...

*John Murphy - Pumped Up Kicks "약속한 거예요? 알겠죠?" 이대로는 팀장님 처지가 뭣같아질 텐데. 머리로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고개는 뭐에라도 홀린듯 저절로 끄덕이고 있었다. 뭐에 홀렸는지는 분명했다. 아무래도 얼굴이겠지... 내가 끄덕이는 것을 본 재민씨가 옆에 있는 사람이 다 뿌듯해지도록 활짝 웃었다. 약속을 꼭 지키라고 몇 ...

묵직한 가죽 냄새가 나는 공간, 정장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배 위로 두 손을 깍지껴 얹은 이가 입을 열었다. "너무 위험한 게 아닙니까?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도 있잖습니까? 그놈들이 다 같이 못된 마음이라도 먹게 되면 여러 모로 피해가 막심합니다." 그 걱정 가득한 말을 들은 이는 대수롭잖게 웃었다. 누군가 들고 나는 것이 제일 잘 보이는 자리...

14편

다행히도 집 문제는 아주 빠르게 해결됐다. 이삿날에는 도영씨도 동행했다. 그가 불안해하는 것에 염치 불고하고(사실 나도 불안했으므로) 부탁을 했으나 평일에 이사를 해야 했다면 곤란해질 뻔 했다. 나와 도영씨가 동시에 휴가를 쓰는 것은 사내 소문의 신호탄이 되었을 것이다. 이미 눈치 빠른 몇몇은 그새 나와 도영씨 사이의 기류를 눈치채고 있었으니. 어떻게 그럴...

13편

친구 집에서는 새소리가 아주 잘 들렸다. 나무가 많은데다 저층이라서인지. 나는 시끄러운 새소리에 잠을 깨 창밖을 바라보며 스트레칭 했다. "짹짹짹!" '라랄랄 랄라~' "짹? 짹짹." '야, 쟤 노래 부른다.' 그런데 새들이 저희들끼리 수다를 떠는 소리가 들린다. 내 귀에는 다 똑같은 지저귐 소리로 들리는데 뭐가 달랐나 보다. 새 중 한마리가 꼽을 주는 소...